

경주 여행 첫 식사로 박신우제면소에 방문했다. 운좋게 좋은 시간에 1시 예약. 성수기임에도 주차는 근처 도로나 공영주차장에 운 좋으면 금방 할 수 있었다. 아마 벚꽃철엔 훨씬 주차가 어려울듯하다.
인생우동집이라는 평도 많고, 성수기인 요즘 경주에 와서 어지간한 식당은 웨이팅이 빡센 편인데 예약제로 쾌적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뒤에 더 자세히 적겠지만, 입장 뒤 식사가 준비되고, 가게를 나서기까지의 시간도 그리 빡빡하진 않았다.

메뉴는 비교적 단촐하다. 그러나 가격은 사악하다. 아무래도 면에 강점이 있는 집이니, 면 추가를 고려해보면 좋을듯하다. 우리는 우선 우엉튀김우동, 간장비빔우동 기본으로 시켰다. 야채튀김은 5천원.




주문을 한 뒤 통유리로 환히 보이는 주방에서는 쉐프님과 두 분의 직원분들께서 차근차근 음식을 만드시고, 음식이 나오는 타이밍을 정확히 안내해주셨다. 서비스, 특히 서빙 시간에 대한 나쁜 리뷰가 존재했는데 개선이 된 것인지 불편함은 커녕, 굉장히 친절하단 느낌이다. 우리 아이가 시끄럽게 구는데도 전혀 눈치 한번 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중요한 맛은, 인생우동이라는 사람들의 평이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온우동은 국물이 가벼우면서도 가쓰오부시의 향은 깊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알았지만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과연 그런 맛이다. 그래서 국물이 산뜻하고 가볍다. 국물이 가볍다보니 쑥갓 하나를 먹어도 입 안에 향이 확 번진다. 이걸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나 같은 사람은 더욱 기쁘게 먹을 것이고,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엔 싫어할 수 있을듯하다.
가벼우면서 향이 깊다는 인상은 냉간장우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면을 참깨가루와 간장국물에 석석 비벼 한젓가락 입에 넣으면, 다른 미각을 압도하며 입 안에 참깨향이 확 번진다. 우선 첫 입에 맛을 보고, 와사비와 간장을 조금씩 넣어 다시 한 입.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참깨향이 압도한다.
가벼운 국물에 깊은 향이 박신우제면소의 특징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우동의 면발은 확실히 탱글탱글 입안을 꽉 채운다. 온천계란튀김도 알맞게 익혀져서 훌륭한 퀄리티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간장우동의 짙은 참깨향도 그것에 코가 좀 익숙해지고 마지막에 국물을 후루룩 먹을 때는 제법 밸런스가 훌륭하게 전달된다.
...그런 것 보다도....




이곳은 굉장히 수상한 가게다.
커피, GSC 생두 봉투. 처음에는 이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가게를 눈으로 수색하다보니 이번엔 그라인더. 포트는 온도조절은 되지 않는 단순한 녀석. 그리고...원두를 라벨링해서 나눠놓은 것이...꽤 여러개.
음...메뉴판엔 없고...근데 커피가 저렇게 잘 갖춰져...는 있는데 커피 추출하는 용품은 달랑 작은 기계식 그라인더 하나. 포트는 매장용은 아니고.
음...사장님...카페...창업 따로 준비하시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쉐프께서 1시 예약손님들의 음식 서빙을 모두 마무리하신 뒤에, 뜬금없이 바로 나와 커피를...내린다? 그래서 찰칵 찰칵 눈치를 살살 보며 사진을 몇장 더 찍었는데...
"한 잔 드셔보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께서 스윽 커피를 한잔 건낸다.
오. 나만? 홀 안에 두 팀 더 남아있고, 우리 테이블에도 우리 식구가 더 있는데, 오로지 나만? 럭키!
"저 사장님, 죄송하지만 원두 어떤 거 쓰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네에?"
사장님은 뜻밖이라는듯, 여태 한번도 벗지 않고 계시던 마스크를 올리고 커피를 마시던 것을 멈추고 날 바라보며, 커피 종을 설명해주셨다.
"조금 섞었어요. 과테말라 게이샤랑, 페루 게이샤랑, 케냐 AA랑."
"아 저는 시트러스한 것보단 플로럴한 걸 좀 좋아해서 게이샤는 많이 안마셔봤는데, 이거 정말 맛있네요."
덩치가 꽤 크신 사장님이 마스크를 쓰고 험상궂은 얼굴로 음식만 만드는 것 같더니만, 커피 이야기를 하실 땐 퍽 사람이 부드러워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꽤나 길게 대화를 나누었다. 돌돌이 로스터. 로스팅과 음식에 일관된 철학. 홈로스팅의 장점과, 전문적이지 못한 카페에서 왜 커피가 맛이 없는지도.
커피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육수에 대한 그 가벼운 인상도 명확해졌다. 음식이란 밸런스와 레이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커피와 비슷하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한 그릇 안에 담긴 각각의 레이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박신우제면소의 음식.
그런 미식관이, 커피에도 담겨, 이 게이샤, 웬만한 전문점보다 훨씬 맛있다. 로스팅을 통해 충분히 당화가 이루어진 깊은 단맛이, 아이스커피(아메리카노는 아니므로)를 절반 정도 마실 때쯤 치고 올라왔다. 게이샤 특유의 그 가벼운 시트러스향과 커피의 풍미 역시. 완벽해.
"사장님 커피 마실 거예요?"
"준비하고 있어요."
클린컵에 이르기까지 커피를 맛있게 비우자 이제...2시 타임 손님들이 대기석을 가득 메운다. 우리는 후다닥 자리를 치우고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또 사장님께 질문. 번거로운 손님께 사람 좋은 미소를 다시 지어보인다. 후식 커피 판매를 준비중이시라고. 그리고 이 수준의 커피를 볶아내기 위해 가내수공업 통돌이 로스팅으로, 900kg이나 지금껏 로스팅을 해왔단다.
부디 이 훌륭한 커피가 가게에서 정식 판매되고, 그래서 로스팅 양이 늘어나더라도 잘 유지될 수 있길 바라며, 이 곳이 우동이나 커피나 일관되게 참 훌륭한 식당이라는 점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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