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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호프(HOPE) : 동어반복에서 극한 찾기

#나홍진 유니버스에 대한 경계

 <황해>를 어떻게 보게되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격자>의 센세이셔널한 성공 이후 제작된 그의 심상치않은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이 영화에 대해 문외한인 나를 혼자 극장으로 향하도록 했다. 그리고 영화는 전작보다 훨씬 강한 그만의 테이스트를 보여주었다. 거대한 아이러니와 무력한 개인을 잇는 폭력의 매개. 

 

 그러다보니 성공적인 과작 감독인 그의 영화를 <랑종>을 포함 모두 다 보게되었다. 아이러니, 개인, 폭력. 이 셋의 관계는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속 손가락의 존재를 떠올리도록 한다. 아이러니는 그 자체로 무력한 개인에게 폭력으로 작용한다. 여기서 어떤 침해의 의도를 읽어나간다면 <랑종>과 <곡성>이 되는 것이고, 아이러니 자체를 그저 조명한다면 프레임은 <황해>로 향한다. 

 

 다만, <추격자>의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으로 회자되는 슈퍼마켓 씬만 보더라도, 나홍진의 염세주의와 아이러니에 대한 그만의 시선을 여전히 잘 느낄 수 있다. 어떤 침해의 의도 없이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부조리. 그 아이러니에 우리는 모두 놓여져있다. 나는 그의 영화 중 <황해>를 가장 먼저 감상했다는 점에서 너무 그에게 큰 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있고, 더불어 그가 보이는 아이러니와 폭력의 관조적 관점에 대해 조금 더 균형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운 좋은 관객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호프>를 보면서 영화가 가진 강점들보다는 그의 영화 안에 반복되는 동어반복에 대해 경계심을 유지했다. 이번에도 거대한 아이러니. 이번에도 그 아이러니 자체가 인간에게 띠게 되는 폭력성. 이번에도, 너무나 무력한 개인들의 이야기. 다만, 영화의 제목처럼, 희망. 이번에도 나홍진의 작품은 반복되는 그의 테마 안에서 영화를 독해해야만 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다만, 장르물에서 동어반복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순 없기 때문에 마땅히 장점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어떻게 이렇게 컬트한 감독이 헐리웃 배우들까지 끌어다가 수백억의 프로젝트를 굴리게 되었는지 원. 하긴 원래 영화 자본이 그런 식이긴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단점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시각적 경계심을 던진다. 황정민이 분한 주인공 캐릭터의 검은색 경찰제복이 낯설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 들어간 관객으로선 우선 그의 복장에서 영화에 대한 의심이 생겨난다. 굳이 모자가 필요했을까 싶은. 그리고 일단 도입부에서 그의 복장에 대한 시각적 경계심이 생기니, 이어진 장면들에 대한 시각적 회의가 계속된다. 초반부에 황정민이 이리 저리 무전을 치면서 운전하는 씬이 여러번 나오는데 순간순간 지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이 2000년대 이후의 건물들이다. 검은 구형 차량, 핸드폰이 아닌 무전기, 그러나 차창밖엔 신식 건물. 영화가, 잘 다듬어지지 않았구나 하는 선입견. 

 

 이렇게 경계심이 부쩍 들어버리니 호포읍에서 시작되는 초반부의 탐색 구간이, 나름 많은 돈을 투자해서 미장센을 꾸몄음에도 역시 낯설다. 강렬한 '멸공' 현수막들을 통해 전두환 시기임을 넌지시 이해할 수 있지만,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 정도 규모의 읍내라면 훨씬 '어린애'들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마을에 아이들은 머리털 한올 보이지 않고 괴물에 맞서 싸우는 것은 베트남전을 거친 노인네들 뿐. 정호연이 분한 여주인공 '성애'는 수다스러운 캐릭터가 아직 어린 20대 처녀임을 알 수 있는데, 마을에서 자란 그녀의 동년배 하나 없다는 점도 전혀 이해가 되질 않는다. 50평 이상 규모의 대형 정육점 식당이 존재하고 중학교도 갖춘 항구 마을이 온통 노인네들 뿐이라는 점은, 영화에서 갈등의 핵심 축이 되는 중반부의 어린 외계인의 시체와의 대비도 흐릿하게 만들어버린다.  

 

 즉, 미장센 측면에서 '아무도 없는 마을'을 구현하려는 시도와 '총기 액션'을 타당화하려는 시대 설정이 그야말로 미스매치다. 완전 꽝이다. 이런 관점에서 첫 1시간의 외계인 출몰 구간에, 나는 충분히 몰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어지는 느릿한 '미스터리' 구간에서도 갑갑함으로 느꼈다. 속편에서 '골룸' 롤을 맡을 것이 뻔한 발암 캐릭터(대표적으로 <부산행>에서 최귀화가 맡은 노숙자 배역 같은)로 극을 끌고 가는 키치한 연출이나 코믹한 회상 씬에서의 불필요한 유장함. 이 또한 나홍진의 전작에서 한두번씩은 구경했던 것이니 그러려니. 그러나 동시에 왜 불호가 쌓이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득. 

 

#그래서 장점이 단점을 덮을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하나의 영화를 기존의 작품들에서 인용된 설명의 틀들로만 설명할 순 없으니 영화의 고유한 개성에 존중해서 감상하는 태도를 취해보자면, <호프>는 우선 대체불가한 나홍진 고유의 작품임은 확실하다. 반복된 거대한 아이러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냈고, 폭력의 스펙타클은 극한까지 밀어올렸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해요?"라며 그냥 대강 넘어간 자동소총들을, 간간히 탄창교환씬까지 밀도있게 쌓아올리며 한국에서 전에 보여준 바 없는 총기액션으로 승화시켰다. 추격전으로서 두번의 카체이스씬의 센세이셔널함은 <트랜스포머> 1편에서의 시각적 충격에 비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스릴러 영화로서 '스릴'이 있는가 하면 장점도 있고 무난한 점도 있고 빠지는 점도 있다. 장르적 이해가 높은 사람이라면 외계인 시체가 나오는 장면들이 복선으로도 작용할 수 있고 맥거핀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데, 어쨌든 감독의 '의도'는 드러나는 불필요한 컷이 좀 있다. 액션에서의 스릴은 카체이스와 총격의 높은 품질에 따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높은 몰입도를 선사하는데 그에 비해 미스터리로서의 스릴은 아주 다수가 속편을 의식한듯한 장면들이라서 긴장이 좀 떨어진다.

 

 장르를 장르로서, 캐릭터를 캐릭터로서 이해하려는 입장을 취하는 나 같은 유형의 관객은 성애의 수다스러운 대사나 브릿지가 잘려나가서 뚝 뚝 끊기는 편집 등, 눈에 드러난 영화의 부족한 점은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지만 그 장르의 문법에서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면...이건 좀 이야기가 다르다. 과작하는 나홍진의 차기작에서 이런 한계들이 잘 조절될 수 있을지, 그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리고 결말

 불호가 많다지만, 장르 자체라는 점에서 나는 결말은 매우 만족스럽고, 나홍진 유니버스에서 크게 진전한 패러다임 체인지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단일작으로서 훨씬 훌륭하고 시리즈로서 이 내러티브를 이어갈 때 외계인을 어떻게 묘사할지에 대한, 그의 영화 세계에서 레퍼런스가 없기 때문에 기대감은 크지 않다. <황해>에서 면가는 폭력을 반복하다가 전형적인 악당의 허무적 결말을 맞지만, 그것은 그가 '악인'이기 때문이고 운명과 희망이라는 거대한 주제의식이 부여된 외계인들에 대한 어떤 서사를 부여할 수 있을지. 그것이 지구인들의 운명과 어떻게 교합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결말에서 속편의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작 그 자체의 퀄리티라는 점을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결국, <호프>의 한계는 완벽주의자로서 영화를 완성품으로서 시장에 내놓지 못한 나홍진 감독의 한계일 것이다.

 

 영화가 성공하길 바라지만, 나는 이 영화가 1편에서 완성되었다고 느낀다. 영화가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티켓과 2시간 반의 시간이 아깝냐고 하면, 꽤나 괜찮은 팝콘무비다. <곡성>처럼 영화관을 나서면서 얽혀드는 생각을 파고들기보단, 팝콘이나 씻으며 불필요한 불만들을 씹어삼키고 콜라의 단맛처럼 영화의 장점을 호로록하게 되는, 팝콘무비.  

 

한줄평 : 추격자에서 서영희 사망씬까지 보여주고 나서 사실은 하정우가 우주인에게 중성화수술 당했다고 알려주는데 김윤석은 모르는 영화